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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23

형의 논에 밤마다 볏단이 늘기에 관아에 고했더니, 사흘째 밤 논둑에서 잡힌 사람이 충청도 어느 고을에 형제가 있었습니다.아비가 죽으면서 형 덕보에게 위쪽 닷 마지기를, 아우 칠성에게 아래쪽 석 마지기를 주었지요. 숫자만 보면 형이 더 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형이 더 받는 것은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듬해 여름 큰물이 나면서, 위쪽 논으로 올라가던 도랑이 산에서 흘러내린 돌에 묻혔습니다."내년에 하세."그 말이 나온 것이 십여 해 전입니다. 마을 논은 다 아래쪽에 있었고, 위쪽에 논을 가진 집은 덕보 하나였지요. 열 집이 아쉽지 않은 일을 한 집이 아쉬워한다고 해서 마을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덕보는 봄마다 혼자 산에 올라 돌을 파냈습니다. 사흘 파면 열 발쯤 나갔지요. 그런데 겨울이면 다시 무너졌습니다.그사이 아래쪽 석 마지기는 해마다 잘되었습니다."아우가 좋은 걸 가져갔구.. 2026. 9. 22.
유배객 집에 땔나무를 놓고 온 사람들이 하나씩 관아에 불려 갔습니다 윤경수는 새벽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서너 걸음이면 건너는 좁은 마당이라 쓸 것도 없었지요. 그래도 쓸었습니다.강원도 산골에 유배 온 지 삼 년째 되는 사내였습니다.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관아에서 정해 준 끝집에 머물며 마을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몸이었지요.처음에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그러다 아홉 살 계집아이 하나가 사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윤경수가 마른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 그려 보였지요."이것이 사람이라는 글자다. 다리 둘이 걸어가는 모양이다."그 아이가 제 이름 석 자를 흙바닥에 적어 보인 날, 아비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나갔습니다. 그날 저녁 무 두어 개가 사립 안에 놓였지요.산골의 겨울은 나무로 납니다. 그런데 죄인은 산.. 2026. 9. 22.
서른 해 동안 어미 무덤에 절을 한 사내, 마을은 그 무덤을 두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무돌은 새벽마다 흙을 밟았습니다.질흙을 펴 놓고 맨발로 밟아 나가는 것이지요. 손으로 주무르면 지나치는 돌도 발로 디디면 걸립니다. 돌 하나가 남아 있으면 그 항아리는 불 속에서 갈라지니까요.전라도 어느 고을, 산자락에 가마를 앉힌 옹기장이였습니다. 나이는 서른일곱이었지요.마을에서는 그를 효자라 불렀습니다.뒷산 중턱에 작은 봉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비석 대신 무릎께 오는 자연석 하나가 박혀 있었지요. 무돌은 초하루와 보름마다 그 무덤에 올랐습니다. 봄이면 첫 나물, 가을이면 첫 밤을 놓고 절을 두 번 했지요.말은 없었습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일곱 살 겨울에 어미가 병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은 그를 데려다 키운 삼월이었지요. 무돌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그런.. 2026. 9. 22.
느티나무 그늘을 스무 냥에 판 부자, 그날 저녁 제 안방에 남이 누워 있었습니다 전라도 어느 고을 장터 어귀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어른 세 사람이 팔을 벌려야 밑동이 겨우 감기는 나무였지요.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그 아래에서 여름을 났습니다.그런데 고을 제일가는 부자 한부자가 그 땅을 사들이더니, 담을 둘러 나무를 안쪽에 넣어 버렸습니다."저건 마을 나무 아니오.""문서에 마을 나무라고 적힌 데가 있소?"그 한마디에 아무도 대꾸를 못 했습니다. 적힌 데가 없었으니까요. 그 뒤로 정작 더운 한낮이면 그늘이 오그라들어 담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그해 유월, 연장통을 진 타관 사내 하나가 장터에 들어섰습니다. 석우라 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사흘 동안 그 나무 앞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가지만 올려다보았습니다."무얼 보는가.""그늘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2026. 9. 21.
곤장 백 대를 대신 맞아 달라며 열 배 삯을 내민 부잣집 퍽, 퍽, 퍽.관아 마당에서 살점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형틀에 엎드린 사내는 억쇠라고 했지요. 서른넷, 어깨가 소처럼 두툼한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사내는 죄를 지어 그 자리에 엎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매를 대신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 대에 한 냥이었지요.억쇠에게 그 요령을 가르친 이는 곽노인이라는 어른이었습니다."매는 살로 맞는 게 아니라 숨으로 맞는 것이니라."그 어른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이 들어오면 꼭 죄목을 물었지요. 그리고 어떤 것은 맡지 않았습니다. 삯이 곱절이어도요."어른, 넉 냥입니다.""이놈아, 내 등은 하나뿐이다. 등이 하나뿐이니 아무 죄나 얹을 수는 없는 게야."억쇠는 그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그 곽노인이 지난해 가을에 죽었습니다. 밤길에.. 2026. 9. 21.
첫날밤 신부가 신랑에게 먼저 절을 하라 하였습니다 고을 서쪽에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크지 않은 산이었지요. 명심네 것이었습니다. 벼슬을 하던 집안이 기울어 땅이 다 나가고도 그 산만은 지켰지요. 조상이 거기 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그 산 아래에 강씨네가 살았습니다. 고을에서 손꼽는 부자였지요.강진사의 아버지가 죽자 지관이 와서 이 산 저 산을 다니더니, 명심네 산 중턱을 가리켰다 합니다. 거기가 명당이라고요."그 산 중턱을 좀 쓰겠소.""팔 산이 아닙니다."세 번 청했고 세 번 다 거절당했습니다.그러다 어느 날 밤, 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명심의 아버지가 올라가 보니 사람 여럿이 관을 지고 오르고 있었지요. 횃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요."이 산은 내 산이오. 내려가시오!"그날 밤 그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이튿날 .. 2026. 9. 7.
시아버지 제삿날 며느리가 제사상을 뒤엎었습니다 그해 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가을에 걷은 것이 예년의 서너 푼도 안 되었지요. 겨울이 오자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습니다.그 마을에는 곽씨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문중이 크고 오래된 집안이었지요.그 문중에 정순이라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스물넷이었고, 시집온 이듬해에 지아비를 잃었지요. 아이는 없었습니다.논은 장례를 치르는 데 나가고, 삼년상을 치르는 데 나가고, 문중에 낼 것을 내는 데 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나도 안 남았지요.정순은 남의 집 일을 다녔습니다. 하루 품을 팔면 조 몇 되를 얻었고, 그것에 물을 잔뜩 부어 죽처럼 끓여 먹었습니다.옆집에는 일흔 난 목단이라는 노파가 살았습니다."할머니, 오늘 뭐 드셨어요.""물 마셨다."섣달이 되자 사람이 죽어 나.. 2026. 9. 6.
"저를 잡아 가두시오" 어사라 속이던 사기꾼이 제 발로 수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명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서른다섯이었고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이 고을 저 고을을 떠돌았지요.두 해 전부터 그 짓을 시작했습니다.놋쇠 조각을 둥글게 갈아 한쪽에 말 비슷한 것을 새겼지요. 새기는 솜씨가 좋지 않아 말인지 개인지 알 수 없었으나, 말이라 하면 말로 보였습니다.고을에 들어가면 먼저 주막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가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지요. 그러면 며칠 안에 아전이 찾아왔습니다."혹시 나리께서."그러면 품에서 그것을 다 꺼내지 않고 한 귀퉁이만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지요.명수에게는 스스로 세운 규칙이 셋 있었습니다.사흘 넘게 한 고을에 있지 않는다. 벼슬자리와 송사에는 손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벌하지 않는다.셋째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어사 행세로 사람.. 2026. 9. 6.
혼례복을 입은 채 달아난 신부, 온 마을이 횃불을 들고 쫓아 나섰습니다 "이 댁에 시집오면 이태를 못 넘긴다 하더이다.""누가 그럽디까.""소인이 그럽니다."혼례를 하루 앞둔 밤이었습니다. 소를 먹이는 늙은이가 신부의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지요.배진사 댁은 고을에서 손꼽는 집이었습니다. 기와를 얹은 집이 세 채였고 논이 넓었지요. 그 집 아들 두식은 그해 스물이었는데, 벌써 세 번째 혼례였습니다.첫 며느리는 열여덟에 시집와 이태를 못 넘겼습니다. 둘째도 그러했지요. 둘 다 앓다가 죽었다 했습니다.다만 수군거리는 말은 있었습니다."그 댁 논이 또 늘었다더구먼."세 번째 신부는 이웃 고을 초씨 집 딸이었습니다. 이름은 초선이라 했고 열여덟이었지요. 혼수로 논 열 마지기가 딸려 왔습니다.가마에서 내려 마당을 보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그날 밤, 문.. 2026. 9. 6.
눈 덮인 산으로 여섯 살 아이가 들어갔고, 그 산을 아는 사람은 미쳤다는 늙은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호랑이가 사는 산이라 하여 범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습니다.그 산 중턱에 늙은이 하나가 살았지요. 이름은 태보라 했고 나이는 예순아홉이었습니다. 그 집에 삼십 년을 살았는데, 마을 길에서 그 사람과 마주친 이가 몇 되지 않았습니다.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기만 했지요. 그러니 마을에서는 이렇게들 말했습니다."저 늙은이 성한 사람 아니야."아이들이 그 집 앞까지 올라가 돌을 던지고 도망쳐도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와 한 번 보고는 도로 들어갔지요.그 마을에 봉구라는 사내가 살았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고 여섯 살이었지요. 막둥이라 불렀습니다.막둥이는 산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이 겁을 주려고 하는 범 이야기를 오히려 재미있어했지요."저는 안 물려요.""어째서.. 2026.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