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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5

"사흘만 제 남편이 되어 주세요" — 청상과부가 지나던 선비에게 건넨 뜻밖의 부탁 옛날 옛적, 경상도 안동 고을에 이씨 문중이 있었습니다. 솟을대문이 높고, 고을 원님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렸다지요.그 문중에 정월이라는 새댁이 있었습니다. 혼례를 올린 지 반년 만에 남편을 잃은, 스물한 살 청상과부였습니다.남편은 숨을 거두기 전날 밤, 정월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내가 가거든…… 이 집을 나가시오."그때 정월은 그 말뜻을 알지 못했습니다.사십구재가 끝나고 열흘쯤 지난 날, 문중 어른들이 종가 사랑채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문장 어른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지요."자네들, 잘 생각해 보게. 며느리 하나의 목숨인가, 삼백 년 이어 온 문중인가."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곧 답이었지요.그날부터 정월에게 사흘이 주어졌습니다. 밥상만 문 앞에 놓였다가.. 2026. 8. 22.
"삼 년만 기다려 다오" — 과거 보러 떠난 선비를 기다린 기생, 그 십 년의 끝에는 "관기가 사또의 명을 거역하다니! 당장 옥에 가두고 곤장을 쳐라!"평안도 성천 고을 관아 마당에, 한 여인이 끌려 나와 있었습니다. 사또의 수청을 들라는 명을 거역한 죄였지요.이 여인이 지키려 한 것은, 다섯 해 전 강가에서 한 사내와 나눈 약속 하나뿐이었습니다.그 사내는 한양에서 내려온 가난한 선비였습니다. 강선루가 좋다는 말을 듣고 왔으면서도, 정작 누각에는 오르지 않겠다던 사람이었지요."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강이 작아 보이거든. 나는 강을 작게 보고 싶지 않소."떠나던 날, 선비는 강둑에 어린 버드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삼 년만 주시오. 그 안에 급제해서 돌아오리다. 내가 돌아왔을 때 이 나무가 낭자보다 크거든, 내가 늦은 줄 알겠소."채련은 제 옷고름을 한 자락 찢어 그 가지에 매듭을 지어 .. 2026. 8. 22.
"저 산 아래, 고려 적 금항아리 열두 개가 묻혀 있소" 옛날 옛적, 충청도 청주 고을에 황만석이라는 부자가 살았습니다. 곳간 문에 자물쇠를 셋씩 걸어 두고, 그 열쇠 꾸러미를 무명끈으로 허리에 칭칭 묶고서야 눈을 붙이는 위인이었지요.그 집에 막산이라는 머슴이 하나 있었습니다. 열두 살에 들어와 십여 년을 소처럼 일했으나, 새경은 삼 년째 구경도 못 했지요."네가 하루 세 끼를 먹으니 한 해면 천 끼가 넘지 않느냐. 도리어 네가 나에게 빚을 진 셈이니라."그 무렵 황 부자는 이웃 정순이네 집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빚 대신 딸을 보내라는 것이었지요. 관아에 가 본들 소용이 없었습니다. 원님이 이미 그 영감 편이었으니까요.그날 밤, 막산은 봉당에 앉아 밤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습니다."힘으로도 안 되고 관아로도 안 된다면……"열흘 뒤였습니다. 막산이 뒷산 무너진 절.. 2026. 8. 22.
곳간이 열두 채인 거상은, 어째서 딸을 장터 거지에게 보내려 했을까 "가장 가난한 거지에게 시집가거라. 그것이 이 아비의 마지막 부탁이니라."팔도에 모르는 이가 없던 거상 김 행수가, 숨을 거두기 전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곳간에는 곡식이 열두 채요, 대문 앞에는 그 재물을 탐내는 혼담이 줄을 이었지요. 그 귀한 딸을 어째서 하필 빌어먹는 거지에게 보내라 하였을까요.김 행수에게는 남다른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나흘이 멀다 하고 아무도 모르게 장터에 나가, 모퉁이에서 빌어먹는 젊은 거지 하나를 멀찍이 바라보다 오는 것이었지요. 그리운 듯도 하고 애틋한 듯도 한 눈빛으로요.거상은 딸에게 반으로 갈라진 옥 노리개 하나를 쥐여 주었습니다."그 나머지 반쪽을, 그 아이가 지니고 있을 게다."그러고는 봉해진 유서 한 통을 함께 내주며, 네가 모든 것을 잃을 지.. 2026. 8. 21.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빈 우물을 만 냥에 팔아넘긴 떠돌이 "그 우물은 밤이 깊으면 바닥에서 은이 솟는다오. 나야 급한 사정만 아니면 죽어도 안 팔지."충청도 어느 고을, 빈털터리 떠돌이 하나가 마을 제일가는 구두쇠 앞에 능청스레 앉아 있었습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삼 년째 버려진 우물을, 그는 세상 아까운 보물인 양 어루만졌지요.며칠 전만 해도 앞코 터진 짚신에 엽전 두 닢이 전부이던 자였습니다. 그런 사내가 말끔한 도포를 걸치고,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소중히 안고 나타난 것입니다.상자를 열자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붉은 비단 위에 새끼손가락만 한 은덩이가 곱게 놓여 있었지요. 만석꾼 방두식의 두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습니다."어른, 세상에 은이 저절로 솟아나는 우물이 있다면 믿으시겠소이까?"믿기 어려우시거든 오늘 밤 자정, 아무도 모르게 그 마른 .. 2026.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