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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신부가 신랑에게 먼저 절을 하라 하였습니다 고을 서쪽에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크지 않은 산이었지요. 명심네 것이었습니다. 벼슬을 하던 집안이 기울어 땅이 다 나가고도 그 산만은 지켰지요. 조상이 거기 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그 산 아래에 강씨네가 살았습니다. 고을에서 손꼽는 부자였지요.강진사의 아버지가 죽자 지관이 와서 이 산 저 산을 다니더니, 명심네 산 중턱을 가리켰다 합니다. 거기가 명당이라고요."그 산 중턱을 좀 쓰겠소.""팔 산이 아닙니다."세 번 청했고 세 번 다 거절당했습니다.그러다 어느 날 밤, 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명심의 아버지가 올라가 보니 사람 여럿이 관을 지고 오르고 있었지요. 횃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요."이 산은 내 산이오. 내려가시오!"그날 밤 그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이튿날 .. 2026. 9. 7.
시아버지 제삿날 며느리가 제사상을 뒤엎었습니다 그해 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가을에 걷은 것이 예년의 서너 푼도 안 되었지요. 겨울이 오자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습니다.그 마을에는 곽씨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문중이 크고 오래된 집안이었지요.그 문중에 정순이라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스물넷이었고, 시집온 이듬해에 지아비를 잃었지요. 아이는 없었습니다.논은 장례를 치르는 데 나가고, 삼년상을 치르는 데 나가고, 문중에 낼 것을 내는 데 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나도 안 남았지요.정순은 남의 집 일을 다녔습니다. 하루 품을 팔면 조 몇 되를 얻었고, 그것에 물을 잔뜩 부어 죽처럼 끓여 먹었습니다.옆집에는 일흔 난 목단이라는 노파가 살았습니다."할머니, 오늘 뭐 드셨어요.""물 마셨다."섣달이 되자 사람이 죽어 나.. 2026. 9. 6.
"저를 잡아 가두시오" 어사라 속이던 사기꾼이 제 발로 수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명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서른다섯이었고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이 고을 저 고을을 떠돌았지요.두 해 전부터 그 짓을 시작했습니다.놋쇠 조각을 둥글게 갈아 한쪽에 말 비슷한 것을 새겼지요. 새기는 솜씨가 좋지 않아 말인지 개인지 알 수 없었으나, 말이라 하면 말로 보였습니다.고을에 들어가면 먼저 주막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가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지요. 그러면 며칠 안에 아전이 찾아왔습니다."혹시 나리께서."그러면 품에서 그것을 다 꺼내지 않고 한 귀퉁이만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지요.명수에게는 스스로 세운 규칙이 셋 있었습니다.사흘 넘게 한 고을에 있지 않는다. 벼슬자리와 송사에는 손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벌하지 않는다.셋째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어사 행세로 사람.. 2026. 9. 6.
혼례복을 입은 채 달아난 신부, 온 마을이 횃불을 들고 쫓아 나섰습니다 "이 댁에 시집오면 이태를 못 넘긴다 하더이다.""누가 그럽디까.""소인이 그럽니다."혼례를 하루 앞둔 밤이었습니다. 소를 먹이는 늙은이가 신부의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지요.배진사 댁은 고을에서 손꼽는 집이었습니다. 기와를 얹은 집이 세 채였고 논이 넓었지요. 그 집 아들 두식은 그해 스물이었는데, 벌써 세 번째 혼례였습니다.첫 며느리는 열여덟에 시집와 이태를 못 넘겼습니다. 둘째도 그러했지요. 둘 다 앓다가 죽었다 했습니다.다만 수군거리는 말은 있었습니다."그 댁 논이 또 늘었다더구먼."세 번째 신부는 이웃 고을 초씨 집 딸이었습니다. 이름은 초선이라 했고 열여덟이었지요. 혼수로 논 열 마지기가 딸려 왔습니다.가마에서 내려 마당을 보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그날 밤, 문.. 2026. 9. 6.
눈 덮인 산으로 여섯 살 아이가 들어갔고, 그 산을 아는 사람은 미쳤다는 늙은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호랑이가 사는 산이라 하여 범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습니다.그 산 중턱에 늙은이 하나가 살았지요. 이름은 태보라 했고 나이는 예순아홉이었습니다. 그 집에 삼십 년을 살았는데, 마을 길에서 그 사람과 마주친 이가 몇 되지 않았습니다.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기만 했지요. 그러니 마을에서는 이렇게들 말했습니다."저 늙은이 성한 사람 아니야."아이들이 그 집 앞까지 올라가 돌을 던지고 도망쳐도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와 한 번 보고는 도로 들어갔지요.그 마을에 봉구라는 사내가 살았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고 여섯 살이었지요. 막둥이라 불렀습니다.막둥이는 산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이 겁을 주려고 하는 범 이야기를 오히려 재미있어했지요."저는 안 물려요.""어째서.. 2026. 9. 6.
죽은 종의 이름으로 열 해를 산 사내, 그 종의 어미가 찾아왔습니다 "복동아."활방 문 앞에서 늙은 여인이 사내를 불렀습니다. 사내가 돌아보았고, 여인은 그 얼굴을 보더니 그 자리에 굳어 버렸지요.여인의 아들 복동이는 열 해 전에 죽었습니다. 제 손으로 옷가지를 태웠으니 모를 리가 없었지요.그런데 그 이름으로 대답한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그 이름 두 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열 해 전 충주 고을에서 시작됩니다.그 고을 군기를 맡아보던 남정현이라는 무반이 있었습니다. 관에 들어오는 활을 하나하나 살펴 받는 것이 그 사람 일이었지요.하루는 열여섯 난 아들에게 활 한 장을 보이며 겉껍질을 살짝 떴습니다. 그 아래에 가느다란 줄이 셋 있었지요."내가 보았다는 표다. 겉에 새기면 겉만 흉내 내면 그만이다. 껍질 밑에 새겨야 흉내를 못 낸다.""그리고 가운데 것을 길게 새긴다.. 2026. 8. 30.
제 잘못을 대신 뒤집어써 준 늙은 장인이 곤장을 맞고 사라지자, 젊은 벼슬아치가 한 일 가마 하나가 마당에 놓여 있었습니다.임금께서 타실 것이었지요. 옻칠이 곱게 올랐고 금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마의 뒤쪽 축이 부러져 있었지요.부러진 자리가 하얬습니다. 나무가 오래 말라 죽은 자리는 누렇게 삭는데, 그 자리는 갓 부러진 것처럼 희었습니다.그 축을 깎으라 이른 사람은 송경석이라는 젊은 관원이었습니다.나이는 스물여섯이었고, 그 전해 가을에 문과에 급제했지요. 어릴 적부터 글만 읽어 낫이나 대패는커녕 삽자루도 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공조에 배치되어, 임금께서 타실 가마를 맡게 되었지요.공방 안쪽 구석에는 예순이 넘은 노인이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관노로 나서 벼슬에 오른 사람이었지요."이 나무는 얼마나 말립니까.""세 해요. 급히 마르면 겉만 마르고.. 2026. 8. 30.
곡식 서른 섬 도둑으로 아비가 끌려가자, 종의 딸이 고을 좌수를 마당으로 불러냈습니다 고을 한복판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간이 하나 있었습니다.그 곳간을 지키는 사람은 무돌이라 했습니다. 쉰여덟이었고, 좌수 댁에 딸린 종이었지요. 글도 셈도 몰랐으나 곡식이 몇 섬 드나들었는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발로 안다. 삼십 년을 밟으면 안다."무돌에게는 열아홉 난 딸 새복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곳간 둘레를 돌게 시켰지요."곡식을 훔치는 놈이 대문으로 들어오겠느냐. 앞은 누구나 본다. 그러니 도둑은 뒤로 온다."그해는 걷이가 넉넉해 곳간이 그득 찼습니다. 서른 섬이었지요.곡식을 들이던 날, 한좌수가 곳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문으로 나가지 않고 곳간을 한 바퀴 돌아 뒤꼍으로 갔지요. 담 밑에 서서 한참을 보다가, 발끝으로 땅을 두어 번 눌러 보았습니다."나.. 2026. 8. 30.
저를 팔아넘겼다 믿고 스무 해를 원망한 사내, 포구에는 잠녀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 섬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밭이 갈라졌고 바람이 사나워 배도 못 나갔습니다. 잠녀들도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요.바닷가 마을에 오누이가 살았습니다. 누이는 보름이라 했고 그해 열여덟이었습니다. 동생은 칠복이라 했고 열둘이었지요.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떴고, 아버지가 탄 배는 그해 봄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보름은 열셋부터 물에 들어갔습니다. 칠복은 바위에 앉아 누이를 기다렸지요. 태왁이 물 위에 떠 있다가 그 곁으로 누이 머리가 쏙 올라오면, 그제야 저도 모르게 숨을 뱉었습니다. 누이가 물속에 있는 동안은 저도 숨을 참고 있었던 것입니다.가을이 되어도 비는 오지 않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뭍으로 나갔습니다. 뱃삯은 어른 하나에 스무 냥, 아이는 그 반이라 했지요.그날 밤 보름은 잠을 자.. 2026. 8. 30.
떠돌이 환쟁이의 그림을 제 솜씨라 속이고 감사 앞에 나선 고을 참봉 고을에 그림 잘 그리는 어른이 하나 났다는 말이 돌았습니다.박참봉이라는 사람이었지요. 사람들이 그 집 사랑방에 걸린 그림을 보고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붓끝이 어찌나 야무진지 그림 속 사람의 눈동자가 보는 이를 따라 도는 것 같았으니까요.그런데 그 무렵 장터 한구석에서는, 떠돌이 환쟁이 하나가 국밥값을 못 내고 앉아 있었습니다.계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등에 진 것이라고는 봇짐 하나와 붓통이 전부였지요. 그 붓통은 도화서에서 붓을 잡던 아버지가 남긴 것이었습니다.계춘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먼저 묻고, 오래 듣고, 그러고 나서 붓을 들었지요. 웃으실 때 어느 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는지, 화가 나면 어디를 만졌는지를 물었습니다."눈코입은 누구나 그립니다. 그런데 그것만 그려 놓으.. 2026. 8. 30.
그 집에서는 밤마다 다듬이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는 아무도 들은 적이 없다 하였지요 빈집이었습니다.싸리문은 반쯤 내려앉았고 마당에는 마른 풀이 사람 무릎까지 자라 있었지요. 그런데 그 마당 한복판에 다듬잇돌 하나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풀이 그 돌만 비껴 자란 것처럼 둘레가 훤했습니다.그 집에 든 이는 서윤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태 전까지 이웃 고을 관가에서 문서를 다루던 아전이었지요. 창고의 곡식이 축났고, 장부를 맡았던 사람이 책임을 졌습니다."제가 적은 것과 창고에 있는 것이 다릅니다."그 말을 여러 번 했으나 아무도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서윤보는 말수가 줄었지요.값이 그리 싼 까닭을 물으니, 집을 놓아 준 사내는 오래 비어 있어 그렇다고만 했습니다.그 까닭을 알게 된 것은 그날 밤이었습니다.또드락, 또드락.느리고 고른 소리였습니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달이 밝아.. 2026. 8. 23.
주막을 빼앗으려 외상값을 거꾸로 뒤집은 객주, 그 집 아궁이 뒤에는 짚 다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옛날 옛적, 경상도 어느 고을 어귀에 지붕이 나직한 주막 한 채가 있었습니다.주막을 꾸리는 이는 순덕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지아비를 잃고, 눈 어두운 시어머니 곰례와 둘이서 그 집을 지켰지요.순덕에게는 큰 근심이 하나 있었습니다. 글을 몰랐던 것입니다. 외상은 자꾸 생기는데 적어 둘 수가 없었지요.어느 날 부엌 뒤에 쪼그려 앉은 며느리 곁에, 시어머니가 짚 한 줌을 들고 와 앉았습니다."글을 모르면 손으로 적으면 되느니라."같은 짚으로 새끼 두 오리를 꼬아, 두 줄 같은 자리에 매듭을 하나씩 앉혔습니다. 하나는 주모가 갖고 하나는 술 마신 사람이 갖는 것이었지요."갚으면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함께 푼다. 매듭은 두 손이 지어야 풀리느니라."그 뒤로 주막의 셈은 짚으로 갔습니다. 아궁이 뒤 시렁에 짚 다발.. 2026. 8. 23.
어미 장례비로 맡긴 은가락지, 세 해 만에 찾으러 가자 무게가 달랐습니다 옛날 옛적, 강원도 원주 장터에 은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은을 녹여 비녀며 가락지를 짓기도 하고, 급한 사람이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기도 하는 집이었지요.장터에서 남쪽으로 십 리쯤 가면 청산댁이라는 여인이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았습니다.이 여인에게는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왼손 넷째 손가락의 은가락지를 한 번도 빼지 않는 것이었지요. 밭을 매면서도 끼고 있었고, 빨래를 하면서도 그대로였습니다."어머니, 그건 왜 안 빼세요.""안 빠진다."그리 말하고 웃었지요.청산댁이 자리에 누운 것은 그해 가을이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밤, 어미가 딸을 불러 왼손을 들어 보였습니다."이것만은 네 것이다. 굶어도 팔지 마라. 이것에는 네가 있다."곱단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어미는 그 밤을 넘기지 못했습.. 2026. 8. 23.
"사흘만 제 남편이 되어 주세요" — 청상과부가 지나던 선비에게 건넨 뜻밖의 부탁 옛날 옛적, 경상도 안동 고을에 이씨 문중이 있었습니다. 솟을대문이 높고, 고을 원님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렸다지요.그 문중에 정월이라는 새댁이 있었습니다. 혼례를 올린 지 반년 만에 남편을 잃은, 스물한 살 청상과부였습니다.남편은 숨을 거두기 전날 밤, 정월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내가 가거든…… 이 집을 나가시오."그때 정월은 그 말뜻을 알지 못했습니다.사십구재가 끝나고 열흘쯤 지난 날, 문중 어른들이 종가 사랑채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문장 어른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지요."자네들, 잘 생각해 보게. 며느리 하나의 목숨인가, 삼백 년 이어 온 문중인가."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곧 답이었지요.그날부터 정월에게 사흘이 주어졌습니다. 밥상만 문 앞에 놓였다가.. 2026. 8. 22.
"삼 년만 기다려 다오" — 과거 보러 떠난 선비를 기다린 기생, 그 십 년의 끝에는 "관기가 사또의 명을 거역하다니! 당장 옥에 가두고 곤장을 쳐라!"평안도 성천 고을 관아 마당에, 한 여인이 끌려 나와 있었습니다. 사또의 수청을 들라는 명을 거역한 죄였지요.이 여인이 지키려 한 것은, 다섯 해 전 강가에서 한 사내와 나눈 약속 하나뿐이었습니다.그 사내는 한양에서 내려온 가난한 선비였습니다. 강선루가 좋다는 말을 듣고 왔으면서도, 정작 누각에는 오르지 않겠다던 사람이었지요."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강이 작아 보이거든. 나는 강을 작게 보고 싶지 않소."떠나던 날, 선비는 강둑에 어린 버드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삼 년만 주시오. 그 안에 급제해서 돌아오리다. 내가 돌아왔을 때 이 나무가 낭자보다 크거든, 내가 늦은 줄 알겠소."채련은 제 옷고름을 한 자락 찢어 그 가지에 매듭을 지어 .. 2026. 8. 22.
"저 산 아래, 고려 적 금항아리 열두 개가 묻혀 있소" 옛날 옛적, 충청도 청주 고을에 황만석이라는 부자가 살았습니다. 곳간 문에 자물쇠를 셋씩 걸어 두고, 그 열쇠 꾸러미를 무명끈으로 허리에 칭칭 묶고서야 눈을 붙이는 위인이었지요.그 집에 막산이라는 머슴이 하나 있었습니다. 열두 살에 들어와 십여 년을 소처럼 일했으나, 새경은 삼 년째 구경도 못 했지요."네가 하루 세 끼를 먹으니 한 해면 천 끼가 넘지 않느냐. 도리어 네가 나에게 빚을 진 셈이니라."그 무렵 황 부자는 이웃 정순이네 집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빚 대신 딸을 보내라는 것이었지요. 관아에 가 본들 소용이 없었습니다. 원님이 이미 그 영감 편이었으니까요.그날 밤, 막산은 봉당에 앉아 밤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습니다."힘으로도 안 되고 관아로도 안 된다면……"열흘 뒤였습니다. 막산이 뒷산 무너진 절.. 2026. 8. 22.
곳간이 열두 채인 거상은, 어째서 딸을 장터 거지에게 보내려 했을까 "가장 가난한 거지에게 시집가거라. 그것이 이 아비의 마지막 부탁이니라."팔도에 모르는 이가 없던 거상 김 행수가, 숨을 거두기 전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곳간에는 곡식이 열두 채요, 대문 앞에는 그 재물을 탐내는 혼담이 줄을 이었지요. 그 귀한 딸을 어째서 하필 빌어먹는 거지에게 보내라 하였을까요.김 행수에게는 남다른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나흘이 멀다 하고 아무도 모르게 장터에 나가, 모퉁이에서 빌어먹는 젊은 거지 하나를 멀찍이 바라보다 오는 것이었지요. 그리운 듯도 하고 애틋한 듯도 한 눈빛으로요.거상은 딸에게 반으로 갈라진 옥 노리개 하나를 쥐여 주었습니다."그 나머지 반쪽을, 그 아이가 지니고 있을 게다."그러고는 봉해진 유서 한 통을 함께 내주며, 네가 모든 것을 잃을 지.. 2026. 8. 21.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빈 우물을 만 냥에 팔아넘긴 떠돌이 "그 우물은 밤이 깊으면 바닥에서 은이 솟는다오. 나야 급한 사정만 아니면 죽어도 안 팔지."충청도 어느 고을, 빈털터리 떠돌이 하나가 마을 제일가는 구두쇠 앞에 능청스레 앉아 있었습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삼 년째 버려진 우물을, 그는 세상 아까운 보물인 양 어루만졌지요.며칠 전만 해도 앞코 터진 짚신에 엽전 두 닢이 전부이던 자였습니다. 그런 사내가 말끔한 도포를 걸치고,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소중히 안고 나타난 것입니다.상자를 열자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붉은 비단 위에 새끼손가락만 한 은덩이가 곱게 놓여 있었지요. 만석꾼 방두식의 두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습니다."어른, 세상에 은이 저절로 솟아나는 우물이 있다면 믿으시겠소이까?"믿기 어려우시거든 오늘 밤 자정, 아무도 모르게 그 마른 .. 2026. 8. 21.
[드라마: 원더풀스] 줄거리 · 주요 인물 · 화제성 · 해석 및 평가 줄거리《원더풀스》는 1999년, 종말론이 도시 전체에 번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SF 코미디 액션 드라마다. 작품의 무대는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한 기운이 감도는 해성시다. 겉으로는 조용한 지방 도시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실종과 기묘한 소문,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 이상한 민원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진다. 드라마는 이 낯선 분위기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코미디와 생활감 있는 대사로 풀어내며 독특한 톤을 만든다. 1화의 중심에는 은채니라는 인물이 있다. 은채니는 27세의 청년으로, 건강 문제와 불안정한 삶, 취업의 어려움, 가족과의 갈등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그는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심장이라는 진단을 받은 인물이며, 남들이 기다리는 종말조차 자신은 보지 못.. 2026. 6. 13.
[쇼프로: 유재석 캠프] 프로그램 소개 · 출연진 · 주요 포인트 · 시청자 반응 프로그램 소개《유재석 캠프》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리얼리티 예능으로, 국민 MC 유재석이 초보 캠프장으로 변신해 손님들과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는 단체 캠프형 쇼프로다. 프로그램은 ‘손님도 왕이고, 사장도 왕이다’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힐링 예능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출연자들이 편안히 쉬는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유재석식 게임과 돌발 상황, 숙박 예능 특유의 생활 노동이 더해지며 웃음을 만든다. 1화에서는 캠프가 시작되기 전, 유재석과 직원들이 직접 캠프장을 둘러보고 운영 방식을 정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유재석은 캠프의 총괄이자 사장으로서 안전, 숙소, 식사, 프로그램 진행을 꼼꼼하게 챙기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대규모 인원이 함께 머무는 공간을 .. 2026. 6. 13.